벤틀리의 첫 전기차 토르칼 — 새 디자인 언어부터 미래 전략까지

벤틀리의 첫 전기차 토르칼 — 새 디자인 언어부터 미래 전략까지

창립 106년을 맞은 벤틀리(Bentley)가 마침내 자사 첫 순수 전기차의 명칭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토르칼(Torcal)입니다. 여러 언론은 "바나토(Barnato)"라는 이름을 유력하게 예상했으나, 정작 벤틀리가 택한 것은 스페인의 한 지형에서 빌려온 이 생소한 단어였습니다. 공식 데뷔 무대는 런던으로, 시점은 2026년 9월 23일로 잡혀 있습니다. 벤틀리 토르칼 — 회사가 처음 선보이는 순수 전기차이자 라인업의 네 번째 축, 데뷔는 9월 23일 이 차를 그저 새 모델 하나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컨티넨탈 GT와 플라잉스퍼, 벤테이가의 뒤를 잇는 벤틀리 네 번째 계보인 동시에, 이 브랜드가 전동화로 발을 들이는 첫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토르칼의 정체와 명칭 뒤에 감춰진 사연, 디자인을 미리 엿볼 단서, 나아가 벤틀리가 구상하는 앞날의 청사진과 이 차가 탄생하는 생산 현장의 이야기까지 두루 짚어봤습니다.   토르칼, 그 정체를 파헤치다 토르칼 — 벤테이가보다 몸집을 줄여 "럭셔리 어반 SUV" 자리를 겨냥하는 미드사이즈 전기 크로스오버 벤틀리 스스로 "럭셔리 어반 SUV"로 명명한 이 차는 미드사이즈급 전기 크로스오버에 해당합니다. 덩치 큰 벤테이가보다 한 단계 작게 빚어, 시내에서 부담 없이 굴리기 좋은 체구를 겨냥했습니다. 플랫폼은 포르쉐 카이엔 일렉트릭과 나눠 쓰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폭스바겐 그룹이 내놓은 최신 전기 뼈대에 800볼트 아키텍처와 듀얼 모터가 조합되며, 급속 충전은 0부터 100마일(약 160km)에 해당하는 구간을 7분 만에 메우는 성능이 언급됩니다. 벤틀리의 수장이자 CEO인 프랑크-슈테펜 발리저(Frank-Steffen Walliser)는 이 모델을 가리켜 "우리 역사를 통틀어 가장 깊이 고민한 차"라고 밝혔습니다. 107년에 걸쳐 다져온 주행 성능과 편안함, 영국 특유의 장인정신을 전기차라는 전에 없던 틀에 처음 옮겨 담는 작업인 만큼, 그 부담감을 직접 드러낸 표현입니다. 한편 구동계 제원과 주행 가능 거리, 실내 구성, 가격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으며, 9월 공식 무대까지 차례차례 풀릴 전망입니다.   명칭의 유래 — 스페인 암석 지대와 "토크"라는 어원 스페인 엘 토르칼 데 안테케라 — 토르칼이라는 명칭이 비롯된 웅장한 석회암 카르스트 지대 명칭에 얽힌 사연이 제법 흥미롭습니다. 토르칼이라는 단어는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이름난 자연 경관, 엘 토르칼 데 안테케라(El Torcal de Antequera)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고원 위로 종유석이 솟구친 듯한 압도적인 석회암 풍경으로 이름난 장소죠. 그런데 여기엔 또 다른 어원이 포개집니다. 이 단어는 "비틀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토르퀘레(torquere)에 뿌리를 두는데, 바로 지금 우리가 말하는 토크(torque)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전기모터가 넘칠 만큼 쏟아내는 토크를 명칭 속에 고스란히 새겨 넣은 셈입니다. 다만 이 명칭이 애초부터 확정돼 있던 것은 아닙니다. 관련 업계는 벤틀리의 첫 전기 SUV에 "바나토"라는 이름이 붙으리라 내다봤습니다. 1920년대 르망을 휩쓴 벤틀리 보이즈의 한 명, 우번 바나토(Woolf Barnato)에서 유래한 명칭이라 전통을 잇는다는 면에서 설득력이 있었던 까닭입니다. 실제로 유럽과 영국 쪽에는 토르칼 상표를 미리 등록해둔 벤틀리였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바나토가 남의 상표로 올라 있어 마음대로 쓰기 곤란한 처지였습니다. 그렇게 벤틀리가 끝내 거머쥔 이름이 토르칼이었던 것입니다.   디자인 미리보기 — EXP 15 콘셉트 벤틀리 EXP 15 콘셉트 — 토르칼이 이어받게 될 새 디자인 언어를 앞서 드러낸 실물 차량 토르칼의 실루엣은 진작에 귀띔됐습니다. 2025년 몬터레이 카위크 무대에 오른 EXP 15 콘셉트가 바로 그 예고편 역할을 했죠. EXP 15는 1930년식 3인승 스피드 식스(Speed Six), 이른바 "블루 트레인" 쿠페에서 착안한 길이 5미터를 넘기는 실물 차량으로, 곧추선 그릴과 하염없이 뻗은 긴 보닛, 뒤쪽으로 밀린 캐빈, 존재감 넘치는 리어 하운치를 오늘날 감각으로 다시 풀어냈습니다. 3인승 배치에 더해 반려동물이나 짐을 넣어두는 공간, 바깥에서 걸터앉을 수 있는 테일게이트 시트 같은 실험적 발상까지 녹여냈습니다. 1930년 벤틀리 스피드 식스 "블루 트레인" — EXP 15와 토르칼의 디자인이 뿌리내린 그랜드 투어러 디자인을 이끄는 로빈 페이지(Robin Page)와 그의 팀은 이 새로운 언어를 세 가지 성격으로 규정했습니다. 하나의 바윗덩이를 깎아 만든 듯한 "모놀리식 프레즌스(Monolithic Presence)", 속에 감춘 힘을 표면의 팽팽함으로 표출하는 "머스큘러 폼(Muscular Form)", 그리고 시각적 부피를 걷어내며 면을 세밀하게 마무리하는 "카브드 프리시전(Carved Precision)"이 그것입니다. 토르칼은 이 콘셉트를 양산 버전으로 옮긴 결과물로, 벤틀리가 실로 오랜만에 되살린 곧추선 그릴과 묵직한 볼륨감을 고스란히 물려받습니다.   벤틀리의 앞날 전략 — 조급하지 않은 전동화 벤틀리 Beyond100+ — 완전 전동화 목표를 2035년으로 미루고 하이브리드를 함께 끌고 가는 탄력적 로드맵 이 차를 제대로 읽으려면 벤틀리의 전동화 밑그림을 나란히 살펴야 합니다. 애초 벤틀리는 "비욘드100(Beyond100)" 구상에서 2030년 완전 전동화를 공언했습니다. 그런데 2024년 들어 이를 "비욘드100+"로 손보면서, 순수 전기 전환 시점을 2035년으로 뒤로 물렸습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찾는 고객이 생각보다 많았던 데다, 시장 여건상 곧바로 전기 일변도로 밀어붙이기 힘들었던 탓입니다. 새 로드맵을 떠받치는 핵심은 유연함입니다. 벤틀리는 다가올 10년 동안 해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나 순수 전기 신모델을 한 대씩 선보이는 한편,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는 적어도 2035년까지 나란히 이어가기로 정했습니다. 토르칼은 그 항로에서 처음 등장하는 순수 전기차이자, "2035년 완전 전동화"라는 종착점을 향한 첫발인 셈이죠. 조급함 없이도 나아갈 방향만큼은 또렷이 하는, 럭셔리 브랜드다운 속도 조절입니다.   토르칼이 탄생하는 무대 — 크루의 드림 팩토리 벤틀리 크루 공장 "드림 팩토리" — 87년 묵은 부지를 전동화 흐름에 맞춰 뜯어고치는 중 토르칼의 생산은 벤틀리의 심장부인 영국 크루(Crewe) 공장이 맡습니다. 벤틀리는 유서 깊은 이 터를 "드림 팩토리(Dream Factory)"라 이름 붙여 대대적으로 손보고 있는데, 이미 탄소중립 인증을 확보한 설비를 여기서 한 걸음 더 밀어붙여 "기후 긍정(climate-positive)", 다시 말해 주변 탄소를 되레 빨아들이는 공장을 목표로 삼습니다. 브랜드가 여태 벌인 자체 투자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추진되는 프로젝트입니다. 87년 세월이 쌓인 이 부지에는 얼마 전 새 디자인 센터와 물류 통합 센터가 나란히 문을 열었고, 2026년에는 최신 도장 공장이 본격 가동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눈길이 가는 지점은 조립을 책임지는 건물입니다. 부지에서 가장 연식이 오래된 'A1' 건물이 벤틀리 최초 전기차의 조립을 채비하고 있죠. 제일 낡은 자리에서 가장 앞선 차가 빚어지는 광경인데, 벤틀리가 전통과 전동화를 어떤 식으로 이으려는지가 이 장면에 응축돼 있습니다. 토르칼은 벤틀리가 처음 내놓는 순수 전기차이면서 네 번째 모델 계보이고, EXP 15가 예고했던 새 디자인 언어를 처음으로 양산에 옮긴 차입니다. 완전 전동화를 2035년까지 미룬 신중한 로드맵 위에서, 벤틀리는 바로 이 한 대에 향후 10년을 통째로 실었습니다. 이처럼 "한 브랜드의 첫 EV"는 컬렉터의 눈에도 남다른 무게로 다가옵니다. 특정 브랜드가 새로운 시대로 건너가는 첫 증거물은, 세월이 흐를수록 헤리티지의 출발점으로 되새겨지기 마련인 까닭입니다.

2026-07-08T03:00: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