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23일, 포르쉐를 이끄는 마이클 라이터스(Michael Leiters) CEO는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과 가진 인터뷰에서 "포르쉐는 차를 더 적게 팔아도 돈은 더 벌어야 한다" 고 밝혔습니다. 생산 규모를 줄이는 대신, 마진이 높은 차종에 역량을 모으겠다는 선언입니다. 겉으로는 비용을 아끼겠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포르쉐가 지난 10여 년 동안 밟아온 길을 정반대로 되돌리겠다는 신호에 더 가깝습니다. 2026년 1월 자리에 오른 포르쉐 CEO 마이클 라이터스 — 페라리 CTO와 맥라렌 CEO를 두루 거친 "희소성 경영"의 전문가 최근 몇 년간 포르쉐는 사실상 두 얼굴을 가진 회사였습니다. 하나는 911로 상징되는 스포츠카 명가였고, 다른 하나는 마칸과 카이엔을 해마다 30만 대 가까이 쏟아내던 프리미엄 양산 브랜드였습니다. 라이터스가 지금 메스를 대려는 쪽은 바로 후자입니다. "많이 만들어 많이 파는" 폭스바겐식 볼륨 전략에서 벗어나, "적게 만들어 비싸게 파는" 페라리식 희소성 모델로의 회귀 인 셈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전환이 왜 하필 지금 등장했는지, 숫자가 말해 주는 바는 무엇인지, 그리고 라인업이 어떻게 다시 구성되는지를 차근차근 짚어봅니다. 무너진 실적, 그 뒤를 따르는 전환 라이터스의 발언을 제대로 읽으려면 먼저 포르쉐의 2025년 성적표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포르쉐는 2023년 전 세계에 32만 대를 팔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그 지점이 정점이었습니다. 2025년 인도량은 27만 대로 주저앉았고, 2026년 1분기에는 다시 15%가 줄어든 6만 대에 머물렀습니다. 포르쉐 현행 라인업 — 판매량을 떠받치던 마칸·카이엔의 빈자리가 2025년 판매 급락의 핵심 진짜 충격은 중국에서 터졌습니다. 2025년 중국 인도량은 4만 대로, 1년 만에 26%나 빠졌습니다. 글로벌 감소율의 두 배를 웃도는 속도입니다. 2022년 9만 대였던 물량이 2024년 5만 대로 줄더니, 2025년에는 처음으로 5만 대 선마저 무너졌습니다. 2026년 1월에는 또 한 번 33%가 빠졌습니다. 원인은 뚜렷합니다. 7억 위안(약 9,750만 원)이 넘는 최상위 가격대에서조차, 화웨이-JAC의 마에스트로(Maextro) S800 전기 세단이 지난해 12월 한 달간 포르쉐 파나메라와 BMW 7시리즈,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클래스를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이 팔렸습니다. 중국 소비자들이 더 이상 독일 엠블럼에 프리미엄을 얹어 지불하지 않기 시작한 것입니다. 포르쉐는 중국 내 딜러망을 2024년 약 150곳에서 2025년 말 114곳으로 축소했고, 2026년에는 80곳까지 더 줄일 계획입니다. 화웨이와 JAC가 손잡고 탄생시킨 마에스트로 S800 수익성 지표를 보면 더욱 극적입니다. 2025년 그룹 영업이익은 4억 1,300만 유로로, 전년의 56억 4,000만 유로에서 사실상 증발하다시피 했습니다. 영업이익률은 14.1%에서 1.1%로 추락했습니다. 자동차 부문만 따로 떼어 보면 영업이익은 9,000만 유로, 이익률은 0.3%까지 곤두박질쳤습니다. 그 바탕에는 약 39억 유로에 달하는 일회성 특별비용 이 깔려 있습니다. 제품 전략 재조정에 24억 유로, 전동화 일정 조정에 7억 유로, 미국 관세에 7억 유로가 들어갔습니다. 포르쉐는 2026년 매출 목표를 350억~360억 유로, 영업이익률을 5.5~7.5%로 제시했습니다. 회복을 이야기하지만, 한때 두 자릿수 후반을 자랑하던 마진과는 아직 거리가 큽니다. 결국 라이터스가 말한 "적게 팔고 더 번다"는 낭만적인 비전이라기보다, 마진이 1%대까지 주저앉은 뒤 꺼내 든 응급 처방에 가깝습니다. 왜 하필 그 자리에 마이클 라이터스였나 이 전환을 누가 진두지휘하느냐는 전략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라이터스는 2026년 1월 1일자로 포르쉐 AG의 CEO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전까지 포르쉐와 폭스바겐 그룹의 CEO를 동시에 맡고 있던 올리버 블루메(Oliver Blume)는 그룹 CEO직만 유지한 채 포르쉐 경영권을 넘겼습니다. 한 인물이 두 거대 조직을 한꺼번에 이끄는 구조를 향한 투자자들의 불만이 이번 인사의 배경이었습니다. 라이터스의 이력 — 포르쉐 13년, 페라리 CTO 8년, 맥라렌 CEO 3년을 꿰뚫는 키워드는 "고가·소량·고마진" 라이터스의 이력서는 이번 전환의 방향을 사실상 그대로 예고합니다. 그는 포르쉐에서 13년 넘게 몸담으며 마칸과 카이엔 시리즈를 책임졌고, 그 후 페라리에서 8년 넘게 CTO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7월부터 2025년 4월까지는 맥라렌 오토모티브의 CEO 자리에 있었습니다. 페라리와 맥라렌, 이 두 회사의 공통점은 뚜렷합니다. 차를 많이 팔지 않습니다. 그 대신 한 대당 마진이 두툼하고, 고객은 차를 손에 넣기 위해 줄을 섭니다. 포르쉐가 바로 이 인물을 영입했다는 사실 자체가, 앞으로 포르쉐가 향할 방향을 말해 줍니다. "적게 팔고 더 번다"는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굴러가나 첫째, 생산능력을 수요 수준에 맞춰 줄입니다. 포르쉐가 팔아오던 약 28만 대 아래로 생산 상한선을 끌어내리겠다는 것이고, 일각의 보도는 연 20만 대 안팎까지 언급합니다. 공장을 풀가동해 재고를 시장에 떠넘기는 대신, 딱 수요만큼만 만들어 가격 결정권을 회사가 직접 쥐겠다는 구상입니다. 차가 흔하지 않아야 가격이 버텨 줍니다. 둘째, 마진 목표를 다시 위로 끌어올립니다. 라이터스가 마음에 두고 있는 영업이익률은 10~15% 구간으로 전해집니다. 바닥이 1%대였다는 점을 떠올리면 상당한 도약이며, 이는 차 한 대당 수익을 키우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는 수치입니다. 셋째, 고마진 특별 모델로 제품 믹스를 끌어올립니다. 라이터스는 얼마 전 선보인 '토이 스토리' 협업 스페셜 에디션 같은 고가 한정 모델을 더 늘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대목에서 포르쉐가 이미 손에 쥔 무기가 바로 엑스클루시브 마누팍투어 (Exclusive Manufaktur), 그리고 존더분쉬(Sonderwunsch) 프로그램입니다. 포르쉐 존더분쉬 — 1,000가지가 넘는 개인화 옵션은 포르쉐가 차 값에 마진을 얹는 통로다 포르쉐는 1986년 자동차 업계에서 처음으로 사내 맞춤 제작 부서를 꾸린 회사입니다. 현재 911 구매자의 90% 이상이 엑스클루시브 마누팍투어 옵션을 고르며, 그 옵션 목록은 1,000개를 넘어섭니다. 비스포크 가죽, 특수 도장, 각인 같은 개인화 항목은 원가 대비 청구 금액이 큽니다. 같은 차를 팔더라도 한 대당 영수증 금액을 키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자, 라이터스가 페라리에서 직접 목격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페라리는 차 값의 상당 부분을 개인화와 한정 모델에서 거둬들입니다. 전동화의 후퇴, 39억 유로가 말해 주는 것 이번 개편에서 가장 값비싼 항목은 전동화 계획을 되돌리는 비용입니다. 39억 유로의 특별비용 가운데 24억 유로가 제품 전략 재조정에, 7억 유로가 전동화 일정 조정에 투입됐습니다. 숫자가 곧 방향을 가리킵니다. 카이엔·파나메라는 2030년대까지 내연·하이브리드를 이어간다 — 포르쉐의 "전기차 단일 노선" 폐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카이엔 위에 자리할 3열 플래그십 SUV(코드명 K1) 는 본래 순수 전기차로 출시될 예정이었지만, 내연기관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먼저 내놓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전기 버전 K1은 더 뒤로 밀렸습니다. 파나메라와 카이엔은 2030년대까지 내연·하이브리드로 계속 만들어집니다. 718은 전기 단일 모델로 전환할 계획이었으나, 전기 버전 출시가 2027년 초로 연기됐고 내연 버전이 이번 10년의 후반부에 함께 돌아옵니다. 차세대 전기 플랫폼(SSP) 역시 일정이 미뤄졌습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FAZ 보도가 짚어낸 부분입니다. 전동화 노선을 되돌리면서 K1이 라인업에서 차지하는 위치 자체가 재검토 대상에 올랐다는 것입니다. 전기차 시대를 전제로 설계된 차였던 만큼, 그 전제가 흔들리자 차의 존재 이유마저 다시 따져 묻게 된 상황입니다. 한 회사가 방향을 바꿀 때 치르는 비용이 회계장부에만 남는 것이 아니라, 제품 로드맵 곳곳에 균열의 형태로 남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라인업이 새로 짜인다 — 위로는 하이퍼카, 아래로는 718 생산을 줄이는 동시에 마진을 끌어올리려면, 라인업의 위와 아래를 함께 손질해야 합니다. 위쪽에서 가장 눈여겨볼 신호는 911과 카이엔 위에 자리할 새 플래그십 입니다. 라이터스는 3월 연례 기자회견에서 911과 카이엔 라인업 상단에 새로운 플래그십 모델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고, 회사 측은 GT와 하이퍼카 세그먼트의 여러 콘셉트를 두고 저울질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포르쉐에는 918 스파이더가 단종된 이후 10년 넘게 진정한 헤일로 카가 부재했습니다. 959, 카레라 GT, 918 스파이더로 이어지던 계보의 다음 자리가 비어 있는 셈입니다. 포르쉐 미션 X 콘셉트(2023) — 911 위 새 플래그십의 디자인 언어가 여기서 비롯될 가능성 티저로 공개된 실루엣은 2023년 선보인 미션 X 콘셉트와 닮았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다만 양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현재는 "검토" 단계이고, 승인되더라도 3~4년 안에 보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파워트레인은 라이터스가 "내연·하이브리드의 수명을 늘리겠다"고 말한 만큼, 순수 전기보다는 내연을 기반으로 할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헤일로 카는 판매량이 아니라 브랜드 가격의 천장을 끌어올리는 장치입니다. 한 대가 비쌀수록 그 아래에 놓인 911까지 비싸게 받을 명분이 생깁니다. 아래쪽에서는 718 박스터와 카이맨이 다시 돌아옵니다. 718은 지금 전 세계적으로 생산이 중단된 상태인데, 보급형 가격대를 지키며 신규 고객을 브랜드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다시 떠맡습니다. 라이터스는 고마진을 내세우면서도 "새 고객을 브랜드로 꾸준히 데려오고 싶다"며 718을 구상에서 빼지 않았습니다. 얼핏 모순처럼 들리지만, 진입 모델로 들어온 고객이 시간이 흐르며 911과 한정 모델로 올라서는 것이 포르쉐가 오랫동안 굴려 온 사다리입니다. 718은 바로 그 사다리의 첫 칸입니다. 포르쉐 718 박스터·카이맨 — 신규 고객을 브랜드로 이끄는 진입 사다리의 첫 칸 결국 포르쉐는 폭스바겐에서 멀어져 페라리의 길을 따라간다. 이번 개편의 본질은 정체성에 대한 선택입니다. 지난 10년간 포르쉐는 마칸·카이엔을 앞세워 BMW·메르세데스가 버티고 선 프리미엄 볼륨 시장 으로 내려갔습니다. 덩치는 커졌지만, 중국 경기와 현지 전기차 경쟁에 고스란히 노출됐고 2025년에 그 청구서가 한꺼번에 날아들었습니다. 라이터스가 들여온 페라리·맥라렌의 교본은 전혀 다른 길을 가리킵니다. 물량으로 맞붙지 말고, 희소성으로 가격을 방어하라는 것. 이 전략이 성공할지는 두 가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는 줄어든 물량을 마진으로 메울 수 있느냐입니다. 연 28만 대를 20만 대로 줄이면서도 이익을 키우려면 한 대당 수익이 크게 뛰어야 하고, 그 부담은 하이퍼카와 한정 모델, 개인화 옵션이 떠안아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줄여 나가는 과정에서 따르는 고통입니다. 7월 이전의 두 번째 비용 절감안과 1,900명 안팎의 인력 감축, 중국 딜러망 축소, 아우디와의 협업 확대가 모두 이 전환에 따르는 비용입니다.
2026-06-23T03:00: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