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디(Audi)가 "지구촌 어디서나 먹히는 단 하나의 차, 다시 말해 글로벌 카(global car)의 시대는 저물었다"고 공식 석상에서 시인했습니다. 아우디의 기술을 총괄하는 CTO 로우븐 모어(Rouven Mohr)는 얼마 전 호주 매체 고오토(GoAuto)와 만난 자리에서 "미국에서도 중국에서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제는 권역마다 제각기 대응하는 로컬 포 로컬(local-for-local) 전략이 요구된다"고 언급했습니다. 똑같은 아우디인데 실내는 딴판 — 서구권은 물리 버튼 쪽으로, 중국은 큼직한 스크린 쪽으로 길이 갈리기 시작했다 시작은 스크린과 버튼을 둘러싼 대립이었습니다. 아우디가 벌인 시장 조사에서 중국 고객은 널찍한 화면과 AI 기능에 호응한 반면, 유럽과 북미 고객은 손끝에 잡히는 물리 버튼을 더 반겼습니다. 이 격차가 어중간한 타협으로 메우기엔 지나치게 벌어져 있었다는 게 모어의 판단입니다. 그런데 이 사안은 아우디라는 한 회사의 실내 취향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금 자동차 업계 전반이 "온 세계를 차 한 종으로 파고든다"는 낡은 가정을 내려놓는 중이고, 그에 대한 대처가 브랜드에 따라 정반대 방향으로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세계시장 둘로 쪼개짐의 본질과, 슈퍼카 브랜드들이 이에 어떻게 맞서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시장이 둘로 갈라지는 배경에는 두 가지 힘이 있습니다. 첫째는 앞서 살핀 취향의 갈림(중국은 스크린과 AI, 서구는 촉감과 물성)이고, 둘째는 중국 토종 브랜드의 약진입니다. 한때 중국 고급차 판을 쥐락펴락하던 독일 3사는, 이제 값은 더 싸면서 기술은 앞서가는 BYD와 니오, 샤오미 같은 현지 업체에 치여 "상어에서 피라미로" 신세가 뒤바뀌었습니다. 이 두 압박을 풀어내는 해법은 크게 두 줄기로 갈립니다. 한쪽은 차는 물론 브랜드까지 둘로 갈라놓는 현지화 노선이고, 다른 한쪽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동일한 한 대를 파는 단일 제품 노선입니다. 시발점 — 아우디가 브랜드를 둘로 나눈 까닭 대문자 AUDI — 네 개의 링을 떼어낸 중국 전용 자매 브랜드로, SAIC와 손잡고 개발한다 아우디가 내놓은 답은 브랜드를 갈라놓는 것이었습니다. 2024년 11월, 아우디는 중국 국영기업 상하이자동차(SAIC)와 제휴해 'AUDI'라는 신규 브랜드를 출범시켰습니다. 익숙한 네 개의 링을 빼고 대문자 알파벳만 로고에 쓰는, 오직 중국 시장을 겨냥한 자매 브랜드죠. 그 첫 차인 E5 스포트백(E5 Sportback)은 2025년 9월 시장에 나와 2026 중국 올해의 차로 선정됐으나, 출시 초 열기가 금세 가라앉으며 2026년 2월 값을 낮춰야 했습니다. 두 번째 모델 E7X SUV는 2026 베이징 오토차이나에서 모습을 드러냈는데, 중국 CATL이 만든 109kWh 배터리와 900볼트 플랫폼을 비롯한 현지 기술을 대거 품었습니다. 네 개 링을 단 본가 아우디 — 유럽·북미 사양에서는 되레 물리 버튼을 되돌리는 쪽으로 같은 시기에 네 개 링을 단 본가 아우디는 정반대로 나아갑니다. 그간 물리 버튼을 커다란 화면으로 갈아치웠다가 뭇매를 맞은 아우디는, 유럽·북미 차량에서 버튼을 다시 불러들이는 방향으로 노선을 바꾸는 중입니다. 이쪽은 스크린으로, 저쪽은 버튼으로. 두 아우디는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에야 얼굴 보는 남매"처럼 각기 다른 길을 걷습니다. 게다가 아우디는 상하이에 전담 R&D 센터까지 짓고 중국용 모델을 아예 별도 개발 라인으로 떼어놨습니다. 이원화의 번짐 — 독일 3사, "중국을 위한 중국차"로 폭스바겐 ID.UNYX 08 — 중국 샤오펑의 800볼트 플랫폼을 바탕에 얹은 "중국을 위한 중국차" 이런 움직임은 아우디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모회사 폭스바겐(Volkswagen)은 2025년 상반기 중국 내 전기차 판매가 34% 곤두박질치자, 차라리 현지 신생 기업의 기술을 들여오는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2023년 중국 전기차 회사 샤오펑(Xpeng)의 지분 5%를 7억 달러에 확보했고, 샤오펑의 자율주행 기술을 2026년부터 자사 중국 전기차에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양사가 함께 빚은 ID.UNYX 08은 샤오펑 G9가 쓰는 800볼트 플랫폼을 나눠 씁니다. 폭스바겐 그룹은 2030년까지 중국에서 전기차를 약 30종 선보이되, 그 대부분을 현지 파트너와 공동 제작한 중국 전용 모델로 채울 심산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동일한 "중국을 위한 중국" 노선을 선언했으며, BMW는 배터리에 소형 엔진을 발전기 삼아 붙이는 레인지 익스텐더 카드를 저울질하는 중입니다. 대중차와 프리미엄 브랜드가 이런 행보를 보이는 까닭은 뚜렷합니다. 이들은 판매량과 기술로 겨루는 시장에 몸담고 있어, 그곳에서 중국 현지 업체와 부딪치려면 현지의 기호와 현지 기술에 맞게 차를 새로 설계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에서, 슈퍼카 브랜드들은 전혀 다른 해답을 꺼내 듭니다. 정반대 행보 (1) 포르쉐 — 현지화를 마다하고 판매를 내려놓다 포르쉐 차이나 — 판매가 반 토막 나는 것을 무릅쓰고도 현지 전용 브랜드도, 현지 생산도 벌이지 않는다 포르쉐(Porsche)는 아우디와 마찬가지로 폭스바겐 그룹 식구지만, 중국을 향한 해답은 정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포르쉐의 중국 판매는 2022년 약 9만 3천 대라는 정점을 찍은 뒤 2024년 5만 6,900대, 2025년에는 약 4만 2천 대까지 내려앉았습니다. 4년째 이어진 내리막이자 전성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그럼에도 포르쉐는 중국 전용 브랜드를 세우지도, 현지에서 차를 만들지도, 중국인 입맛에 맞춰 차를 뜯어고치지도 않습니다. 그 대신 포르쉐가 고른 길은 "물량보다 가치(value over volume)"입니다. 판매를 무리하게 밀어붙여 브랜드를 소모하기보다, 대수가 줄더라도 브랜드의 값어치와 고객 충성도, 딜러의 수익성을 지켜내겠다는 셈법이죠. 실제로 포르쉐는 중국 딜러망을 2024년 말 150곳에서 2025년 말 114곳으로 축소했고, 2026년까지는 80곳 남짓으로 한층 더 줄일 방침입니다. 이렇게 아낀 재원은 상하이에 새로 문을 연 R&D 센터에 쏟아붓습니다. 판매 하락을 돌발 사고가 아니라 계획된 조정으로 여기는, 이원화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자세입니다. 정반대 행보 (2)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 "원본에는 손대지 않는다" 페라리는 중국 판매를 전체의 10% 밑으로 눌러둔다 — 팔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팔지 않으려는 선택이다 슈퍼카의 가장 윗자리로 눈을 옮기면 이 자세는 한결 또렷해집니다. 페라리(Ferrari)는 중국 판매량을 일부러 전 세계 인도 대수의 10% 이내로 붙들어 둡니다. 더 팔 여력이 있어도 희소성을 지키려 스스로 한도를 씌우는 식이죠. 실제로 중국 판매는 2022년 약 1,500대에서 2025년 약 900대로 감소했지만, 페라리는 이를 심각한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구조를 짜둔 덕분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근래 페라리가 중국을 똑바로 노린 승부수를 한 차례 던진 것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바로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차 루체(Luce)입니다. 페라리 루체 — 첫 순수 전기차를 다른 어디보다 중국에 먼저, 88대만 한정 출시해 몇 시간 만에 매진시켰다 페라리는 루체를 그 어떤 시장보다 중국에 앞장서 선보였고, 중국에서 상서로운 숫자로 여겨지는 88대만 물량으로 배정했습니다. 이 수량은 판매 개시 몇 시간 만에 남김없이 소진됐습니다. 값 역시 중국에 유리하도록 설계했습니다. 내연기관 페라리에는 수입세와 소비세, 사치세가 층층이 얹혀 약 75%에 달하는 세금이 매겨지지만, 전기차는 소비세를 물지 않고 대도시에서 번호판도 곧바로 발급됩니다. 그런 덕에 루체의 중국 판매가는 약 3,988만 위안(약 58만 7천 달러, 한화 약 8억 원)으로, 유럽 시작가보다 5만 달러쯤 저렴합니다. 여러 매체가 이 차를 가리켜 "페라리가 중국을 되찾으려는 승부수"라고 풀이한 배경입니다. 다만 층위는 갈라서 봐야 합니다. 루체는 중국을 겨냥해 기계적으로 새로 설계한 전용 차가 아니라, 전 세계에 똑같이 파는 동일한 차를 중국에 우선, 유리한 조건으로 내준 사례입니다. AUDI가 네 개 링을 떼고 처음부터 다른 차를 만들어낸 것과는 성격이 다르죠. 그럼에도 "중국에 맞춰 아무것도 바꾸지 않겠다"던 페라리마저 전기차에서만큼은 중국을 먼저 겨냥해 움직였다는 점은, 이원화의 압박이 슈퍼카 꼭대기까지 미쳤다는 방증입니다. 람보르기니 — "지역에 맞게 손본 차가 아니라,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원본"이라는 원칙 람보르기니(Lamborghini)는 이 신념을 말로 분명히 못 박았습니다. CEO 스테판 빙켈만(Stephan Winkelmann)은 "럭셔리 사업이 여느 산업과 구별되는 지점은, 하나의 디자인을 지역에 맞춰 뜯어고칠 수 없다는 데 있다. 사람들이 갈망하는 것은 원본인 만큼, 우리는 특정 지역용으로 개조한 차를 내놓을 뜻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 원칙을 지키며 람보르기니는 2025년 1만 747대를 고객에게 넘겨 매출 32억 유로라는 사상 최대 성과를 거뒀습니다. 권역별로 보면 유럽·중동·아프리카가 4,650대, 미주가 3,347대, 아시아·태평양이 2,750대로, 어느 한 시장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이 돋보입니다. 빙켈만의 말마따나 "중국에 과도하게 노출되지 않은" 구조가 시장 침체를 막아준 방패 역할을 한 셈입니다. 이 이원화가 소비자에게 주는 의미 세계 어디서든 동일한 한 대 — 이원화 시대에 외려 값어치가 굳건해지는 자산 여기서 슈퍼카를 눈여겨보는 이에게 중요한 시사점이 드러납니다. 브랜드가 시장마다 차를 잘게 나눌수록, 그 차에 깃든 "전 세계 공통의 열망"은 옅어집니다. 중국용 스크린 덩어리와 유럽용 버튼 차량이 서로 별개의 물건으로 갈리는 순간, 그 차는 어느 시장에서도 하나뿐인 원본이 되지 못합니다. 거꾸로 페라리 296, 람보르기니 레부엘토, 포르쉐 911처럼 서울에서든 슈투트가르트에서든 상하이에서든 한결같이 동일한 한 대는, 시장이 쪼개질수록 도리어 귀한 "원본"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원화는 대중차에게는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지만, 슈퍼카의 잔존가치 입장에서는 예상 밖의 순풍입니다. 손대지 않은 단일 글로벌 모델이 희귀해질수록, 그 차를 지금 손에 쥔 사람의 자산은 세계 어느 시장에 꺼내놓아도 먹히는 힘을 지니게 되는 까닭입니다. 국경을 자유로이 오가는 슈퍼카 시장에서 이 "어디에 내놔도 같은 원본"이라는 특성은 생각보다 큰 값어치로 돌아옵니다.
2026-07-03T03:00: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