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12 엔진의 퇴장을 애스턴마틴(Aston Martin)이 당분간 유예하기로 했습니다. 아드리안 핼마크(Adrian Hallmark) CEO는 오토익스프레스 인터뷰를 통해, 12기통 파워트레인을 각종 규제 기준에 맞춰 다듬은 뒤 새 내연기관차 판매가 아예 막히는 순간까지 이 엔진을 존속시키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다만 여기엔 한 가지 전제가 따라붙습니다. 애스턴마틴 뱅퀴시 — 835마력을 내는 5.2리터 트윈터보 방식의 V12, 애스턴이 끝까지 사수하려는 엔진이다 요점은 "판매량을 줄이면 존속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수의 제조사가 앞다퉈 전동화로 이동하는 흐름 속에서, 애스턴마틴은 오히려 반대편에 서서 내연기관의 수명을 가능한 한 늘리는 쪽을 골랐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애스턴이 V12를 어떤 방식으로 유지하는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왜 마다하는지, 여기에 새 플랫폼과 전기차 로드맵까지 아울러 이 회사의 내연기관 노선과 향후 방향을 한데 묶어봤습니다. 마지노선은 연간 1,000대 발리언트의 6단 수동 — 트윈터보 V12와 수동변속기를 맞물린, 오늘날엔 보기 어려워진 조합 애스턴이 꺼내든 카드는 규제 속 소량 생산 예외 규정입니다. 핼마크는 "V12를 유럽과 미국의 규제에 부합하도록 준비해뒀다"고 말했는데, 여기에는 조건이 깔려 있습니다. V12의 연간 판매 대수를 1,000대 아래로 유지하면 적어도 2035년까지는 해당 법규 적용에서 빠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선을 지키는 동안에는 뱅퀴시(Vanquish)로 대표되는 플래그십과 발루어(Valour)·발리언트(Valiant) 같은 극소량 한정 모델이 새 내연기관차 판매가 봉쇄되는 그날까지 도로를 누빌 수 있습니다. 그 엔진의 정체는 5.2리터 트윈터보 V12입니다. 뱅퀴시에 올라가면 835마력에 약 102kg·m의 토크를 뿜어내고, 최고속도 344km/h와 0-100km/h 3.3초라는 수치를 남깁니다. 동일한 엔진을 튜닝만 바꿔 발루어에는 705마력, 발리언트에는 745마력으로 세팅하는데, 이들 두 모델은 요즘엔 흔치 않은 6단 수동변속기를 얹습니다. 그중에서도 발리언트는 전 세계 단 38대만 제작돼 이미 판매가 끝났습니다. 애스턴이 붙들려는 대상은 그저 엔진 하나가 아니라, "손으로 직접 젓는 V12"라는 점차 희미해지는 감각 그 자체인 셈입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내놓지 않는다 육중한 PHEV를 버리고 경량 48볼트 마일드 하이브리드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전동화를 바라보는 애스턴의 입장은 짧은 한마디에 응축돼 있습니다. 핼마크는 "우리는 헛된 꿈을 꾸지 않는다. 현실적이다"라고 언급했습니다. 이런 실용 노선이 첫 번째로 정조준한 것이 바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입니다. 유럽연합은 주행 기록을 살펴본 결과 PHEV 보유자 상당수가 차량을 충전하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되자 PHEV에 주던 배출 크레딧을 낮췄고, 이를 지켜본 애스턴은 PHEV가 안기는 부가 비용과 중량이 자사 제품군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대안으로 애스턴이 고른 것은 48볼트 마일드 하이브리드입니다. 육중한 배터리와 별도 충전을 요구하는 PHEV와는 달리, 가벼운 48볼트 구조로 소폭의 출력 향상과 연료 효율 개선만 취하는 접근입니다. V8과 V12가 지닌 성능은 그대로 두면서 규제 대응 능력만 보태는, 필요한 딱 그만큼의 전동화인 셈입니다. 물론 예외도 존재합니다. 이 브랜드의 첫 하이브리드 하이퍼카인 발할라(Valhalla)는 V8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조합하는데, 이는 대량 생산 라인업과는 선을 긋는, 극소수를 겨냥한 하이퍼카라는 별개의 카테고리입니다. 한 라인에서 SUV와 스포츠카를 찍는 새 모듈러 플랫폼 애스턴의 미래 골격 — 단일 모듈러 플랫폼으로 SUV와 스포츠카를 한 라인에서 생산한다 내연기관을 붙드는 것이 지금의 전략이라면, 앞으로의 전략을 떠받치는 중심축은 아예 새로 만든 모듈러 플랫폼입니다. 처음부터 다시 그린 이 구조 덕분에 SUV와 스포츠카를 하나의 생산 라인에서 뽑아낼 수 있습니다. 부품 공용화를 넓히고 복잡성은 덜어내 원가를 낮추자는 것이 노림수이며, 10년이 채 지나기 전에 모습을 드러낼 계획입니다. 엔지니어링 관점의 밑그림도 함께 공개됐습니다. 새로운 제조 기법으로 비틀림 강성은 올리면서도 무게가 느는 폭은 최대한 눌러두고, 서스펜션이 붙는 지점을 견고하게 고정해 주행 질감을 높이겠다는 구상입니다. GT 라인에는 뒷바퀴 조향을 얹어 코너로 파고들 때의 반응을 한층 예리하게 손봅니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 플랫폼이 애초부터 순수 전기차까지 포괄하도록 설계된다는 사실입니다. 당장은 V8·V12를 올리지만, 필요할 때 곧바로 전기 구동계로 옮겨탈 수 있는 골격을 앞서 마련해두는 것입니다. 전기차 출시는 2030년대, 고객이 바랄 때 애스턴마틴 전기차 예상도 — 플랫폼은 갖춰두되, 출시 시점은 2030년대로 늦췄다 막상 순수 전기차의 등장 시점은 뒤로 물러났습니다. 애스턴은 본래 2030년까지 전기차 4종을 선보이겠다고 공언했으나, 이제는 첫 전기차 출시를 2030년대로 미뤘습니다. 그 배경은 꽤 솔직합니다. 애스턴 고객들이 전기차를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털어놨기 때문입니다. 기술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작 구매층이 아직 그것을 바라지 않기에 페이스를 늦춘 셈입니다. 플랫폼은 전기차용으로 대비해두되 시장이 무르익는 순간 나서겠다는, 수요를 앞세운 계산입니다. 바로 여기서 애스턴의 전략이 하나로 이어집니다. 팔리는 수량만큼만 V12를 생산해 명맥을 잇고, 실익이 모호한 PHEV는 건너뛰며, 경량 48볼트로 규제를 슬쩍 넘기고, 전기차는 고객이 바라는 때가 올 때까지 뒤로 미룹니다. 서두르지는 않되 채비는 갖춰두는, 지독하리만치 실용에 무게를 실은 행보입니다. 이 전략의 설계자, 그리고 풀어야 할 숙제 아드리안 핼마크 — 벤틀리를 거쳐 애스턴마틴에 합류한 CEO, 조심스러운 전동화 철학을 고스란히 옮겨왔다 이 노선을 설계한 사람의 경력이 눈길을 끕니다. 아드리안 핼마크는 2018년부터 벤틀리의 수장을 맡아 완전 전동화 목표 시기를 2035년으로 미룬 "비욘드100+" 전략을 짜낸 주인공인데, 2024년 9월에는 애스턴마틴 CEO로 둥지를 옮겼습니다. 그가 벤틀리 시절 내세운 "서두르지 않는 전동화" 기조는 애스턴의 이번 내연기관 우선주의와 판박이처럼 포개집니다. 영국의 두 럭셔리 브랜드가 엇비슷한 속도 조절에 나선 이면에 동일 인물의 판단이 자리했던 셈입니다. 핼마크가 마주한 숙제는 뚜렷합니다. 로런스 스트롤(Lawrence Stroll) 회장이 지휘하는 컨소시엄 아래에서 애스턴은 18개월 사이 신차 4종을 잇달아 쏟아내며 제품 경쟁력만큼은 높였지만, 꾸준한 흑자 달성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V12를 붙들고 PHEV를 건너뛴 이번 판단 역시 결국 제한된 자원을 어느 쪽에 투입할지를 둘러싼 셈법과 이어져 있습니다. 애스턴마틴의 이번 결정은 전동화라는 대세를 향한 일종의 반박처럼 다가옵니다. 너나없이 전기차로 내달리는 와중에, 애스턴은 팔리는 만큼만 찍어내는 V12와 가벼운 마일드 하이브리드를 앞세워 내연기관에 허락된 시간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2026-07-10T03:00:00+00:00